분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감정입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억누르고 방치하면 마음속에서 곪아가며, 언젠가는 폭발하거나, 정반대로 무기력감과 자기 비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나는 왜 화가 났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글쓰기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가려는 시도를 공유합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즉시 써보는 것부터, 그 감정 아래에 있는 진짜 마음을 마주하는 것까지, 실전 기록을 바탕으로 감정 해소 과정을 함께 탐색해보려 합니다.
‘화났던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써보기
분노라는 감정은 굉장히 격렬해서, 종종 정확한 상황이나 말의 맥락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글쓰기의 첫 단계는, 그 순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있는 그대로 써보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건 감정 없이,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잠시 옆에 두고, 마치 CCTV 영상을 복기하듯 상황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회의 도중 내가 발언하자마자 상사가 말을 끊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이후 회의가 끝날 때까지 내 아이디어는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적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감정이 올라오겠지만,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은 감정에 덮여있던 실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자, 과잉 해석이나 왜곡된 기억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글을 쓰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세부사항이 떠오르기도 하고,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화가 났을 때는 '그 사람이 일부러 날 무시했어!'라고 느꼈던 장면도, 글로 정리하며 보면 그 사람이 단순히 자신의 업무에 급했다거나, 주의가 분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떠오를 수 있죠. 물론 그게 분노를 정당하지 않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글을 쓰며 우리는 감정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사건의 본질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 감정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 단계는, 그 사건을 겪으며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솔직하게 적어보는 것입니다. 분노는 때때로 다른 감정의 ‘가면’ 역할을 합니다. 겉으로는 분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서운함, 슬픔, 무시당한 느낌, 좌절, 두려움 같은 감정이 숨겨져 있곤 합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단순히 “화났다”는 말에 멈추지 말고, 그 화 속에 어떤 감정이 함께 있었는지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상사가 내 말을 끊었을 때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 감정 속에는 무시당한 느낌과 수치심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 회의에서 내 아이디어를 통해 인정받고 싶었고, 노력한 만큼 반응을 기대했는데, 그것이 단절되면서 상실감을 느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고, 그게 곧 화로 표출된 것 같다.”
이렇게 감정을 깊이 파고들면, 분노가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신호였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화가 났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내 안의 기대, 상처, 미처 돌보지 못한 마음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글쓰기의 목적은 자책도, 타인을 비난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이해받을 때 비로소 가라앉고, 글쓰기는 그 이해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나를 위한 따뜻한 한마디로 마무리하기
세 번째 단계는 감정의 회복을 위한 자기 위로 글쓰기입니다. 충분히 상황을 정리하고 감정을 들여다봤다면, 마지막으로는 그런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으로 글쓰기를 마무리합니다. 이때의 글쓰기는 마치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지금의 나에게 말해주는 형식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써보세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화가 나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이었어. 넌 열심히 준비했고, 그만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잖아. 너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누군가의 반응이 너의 가치를 결정짓는 건 아니야. 그 순간 속상하고 화났던 너를 나는 충분히 이해해. 오늘 그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낸 너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야.”
이런 문장은 생각보다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만이, 그 감정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글로 써내려가며 우리는 비로소 감정을 컨트롤하는 사람이 되고, 세상에 휘둘리는 대신 스스로의 중심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이 마지막 단계는, 글쓰기의 치유력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순간입니다. 때로는 한 줄의 문장이 온종일 우리 마음을 지탱해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이해한다.” 이 말 하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