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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한 책상에서 일주일 살아보기

by rena-space 2025. 7. 26.

 나는 평소에도 정리된 공간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실제 내 책상 위 풍경은 달랐다. 모니터와 노트북 받침대, 키보드와 마우스 외에도 펜꽂이에 가득한 펜과 가위, 자, 형광펜, 메모지, 포스트잇, 아로마 오일, 핸드크림, 립밤, 이어폰, 충전기, 마시다 만 커피잔, 물컵, 간식 봉지, 읽다 만 책과 프린트물까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이 물건들을 쳐다보며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막연한 피로감을 느꼈다. 책상 위가 곧 내 머릿속 같았다. 아이디어, 일정, 걱정, 계획들이 분류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었다.

 그러던 중, 책상 위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주일간 생활해보자는 실험을 결심하게 됐다. 이름하여 미니멀한 책상에서 일주일 살아보기. 이 실험의 목표는 단순히 정리정돈이 아니었다. 책상을 미니멀하게 유지하면 내 감정과 시간 사용, 집중력이 어떻게 달라질지 관찰하고 싶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치울지도 중요한 고민이었다. 결국 노트북, 키보드, 마우스, 물컵, 펜 한 자루, 노트 한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서랍과 수납함 속으로 옮겼다. 정리 후 책상을 바라보니 한편으로는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비워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이렇게 나의 미니멀 책상 일주일 살이가 시작되었다.

미니멀한 책상에서 일주일 살아보기

시야의 여백이 마음의 여백으로


 실험 첫날 아침, 노트북을 열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집중이 잘 되었다. 평소에는 글을 쓰다가도 시야에 보이는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딴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시선을 돌릴 곳이 없었다. 물리적 여백이 생기자 머릿속 생각들도 선명해졌다. 불필요한 걱정들이 잠시 뒤로 물러난 느낌이었다. 오전에 집중해 글을 쓰고 난 뒤, 평소라면 3~4시간 걸릴 일을 2시간 만에 끝냈다. 예상보다 빠르게 일과가 마무리되자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둘째 날과 셋째 날도 비슷했다. 집중력 유지 시간이 늘어나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졌고, 여유 시간에는 산책을 다녀오거나 명상, 스트레칭을 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업무 시간을 줄였음에도 ‘해야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뿌듯함이 남았다는 점이었다. 책상이 비워지자 ‘정리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도 사라졌다. 매일 눈앞에 보이는 어수선함이 작게나마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니멀한 책상은 단순히 물건을 줄인 공간이 아니라, 내 하루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시작이었다.

 

넷째 날부터 느껴진 감정의 변화


 넷째 날이 되자,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화가 찾아왔다. 책상이 깔끔해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동시에 약간의 공허함이 느껴졌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이 많은 물건들로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구나.’ 작은 피규어, 아로마 오일, 예쁜 포스트잇, 다채로운 색상의 펜들은 단순히 업무 도구가 아니라 감정적 위안이었다. 책상 위에서 시선을 돌릴 곳이 없자,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향했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오늘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을 바라는지 자주 묻게 됐다.

 이 과정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예전 같으면 펜꽂이에서 다른 색의 펜을 꺼내거나 포스트잇에 낙서를 하며 잠시 회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도피처가 없었다. 결국 막힘의 원인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불편함을 통과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이 감정의 변화는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미니멀한 책상은 내게 글쓰기뿐 아니라, 내면 탐색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시간, 감정, 사고의 구조가 바뀌다


 일 주일의 실험이 끝나는 날 아침,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지난 7일을 돌아보았다. 첫째, 시간 사용이 달라졌다. 집중력 덕분에 업무 효율이 높아져 더 적은 시간으로도 같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둘째, 감정의 변화였다. 시야의 여백이 마음의 여백으로 이어져, 불필요한 불안이 줄고 잔잔한 안정감이 생겼다. 셋째, 사고의 구조가 달라졌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공간을 정리하면 생각도 정리된다는 말이 사실임을 체감했다. 미니멀한 책상 위에서 글을 쓸 때, 내 문장은 더 간결해졌고 아이디어는 더 명확해졌다.

 실험이 끝났지만, 나는 이 방식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물론 예쁜 소품을 잠시 꺼내놓거나, 책 한두 권을 책상 위에 둘 때도 있겠지만, 기본 구조는 유지하려 한다. 미니멀한 책상은 내게 단순히 ‘깔끔함’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돌려주었고, 내 감정을 정돈해주었으며, 사고의 구조를 명료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선물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