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정리하고 나면 당연히 상쾌하고 개운할 줄 알았다. 그동안 어수선한 공간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무거움이 사라지고,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모든 물건을 치우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긴 책상에 앉았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어색하고 불안했다.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내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문까지 스쳤다.
처음에는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오랫동안 책상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어야 안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펜, 메모지, 책, 노트북, 각종 서류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야말로 ‘나는 바쁘게 일하고 있어’라는 무언의 증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물건들이 사라지자, 마치 나의 존재감도 함께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어색함은 단순히 정리된 공간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정의해온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일의 흐름이 끊기는 듯한 공허감
책상 위를 정리하고 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업무 효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도 정리 후에는 시야가 깨끗해지고, 작업 공간이 넓어져서 몸을 움직이기에도 수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리 후 며칠이 지나자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의 흐름이 갑자기 끊긴 것 같았고, 해야 할 일을 시작하려는데 마음이 공허했다.
그 이유를 고민하다 깨달았다. 나는 책상 위의 물건들을 단순히 도구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일의 단계별 흐름을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단서로 활용해왔다. 예를 들어, 왼쪽에 쌓아둔 서류는 처리할 일, 오른쪽에 둔 책은 참고할 자료, 앞에 펼쳐둔 노트는 현재 작성 중인 내용이었다. 이런 물리적 배치가 일의 순서와 중요도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해주었는데, 모든 것을 치워버리자 일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책상을 깨끗이 비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정리’는 단순히 비워내는 작업이 아니라, 나만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질서를 만드는 작업이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오히려 내 업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경험은 예상 밖이었다.
정돈된 공간에서 드러난 감정의 혼란
책상 위를 정리하면 마음도 정돈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책상 위가 깨끗해지자, 그동안 공간의 어수선함 뒤에 묻혀 있던 내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쌓여 있는 물건들이 있을 땐, 그 혼잡함을 탓하며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물건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너무 정신없어’, ‘이 물건들만 치우면 편안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 감정을 물건 뒤로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치우고 난 후, 더 이상 숨을 곳이 사라졌다. 정리된 책상 위에서 일을 하려 앉으면, 갑자기 마음속의 초조함과 불안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 답은 책상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었다. 미루고 있는 일에 대한 부담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내 능력에 대한 의문 같은 감정들이 공간의 혼란이 사라지자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결국 정리된 공간은 내 마음의 혼란을 없애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심리적 변화였지만, 동시에 중요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어지러운 공간이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내 마음속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진짜 문제라는 것을 책상 위에서 배우게 된 것이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붙잡는 연습이 되다
정리 후 느꼈던 어색함, 공허감, 감정의 혼란은 처음엔 나를 불안하게 했다. 깨끗해진 책상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불편한 감정들이 오히려 좋은 신호라는 걸 깨달았다. 이전에는 물건 뒤에 숨어서 보지 않으려 했던 감정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정돈된 공간이 생기자, 그 빈 여백이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처럼 느껴졌다.
이후 나는 정리의 목적을 단순히 생산성 향상이 아닌, 나를 더 잘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책상 위를 정리한 후 찾아오는 불안과 어색함, 공허감은 내가 그동안 미뤄둔 감정들을 살필 기회였다. 이제는 깨끗한 책상 앞에 앉아 숨을 고르고,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갖는다. ‘왜 불안하지? 무엇이 두렵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정돈된 책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그 여백 덕분에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결국, 예상 밖의 심리 변화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연습이었다. 정리는 공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결도 바꿔나가는 작업이라는 것을 이번 실험을 통해 다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