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실천하려고 처음 책상 정리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방식은 ‘무조건 버리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리가 점점 힘들어지고 감정적으로도 지쳤다는 걸 느꼈다. 특히 버릴지 말지를 결정하기 애매한 물건 앞에 섰을 땐,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쓰진 않지만 애정이 있거나,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정은 번번이 미뤄졌고, 오히려 버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정리가 더디게 진행됐다. 물건을 기준 삼아 없애기를 반복하다 보니, 내가 왜 이걸 갖고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정리는 물건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수단일 텐데, 나는 도리어 숫자에 집착하며 ‘몇 개 줄였는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결국 그 방식으로는 책상 위 정리가 완성되지 않았고, 마음속 정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남기고 싶은 것부터 골라보기
이후 시각을 바꾸기로 했다. 버릴 물건을 찾는 대신, 남기고 싶은 것부터 고르자는 기준으로 접근해 보았다. 책상 위 물건 중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확실히 필요한 것. 자주 손이 가고, 나를 도와주며, 의미 있는 것. 이 기준으로 하나씩 선택해보니 정리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애매한 것 앞에 서서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필요하지 않다면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보다, '내가 꼭 남기고 싶은 것만 자리에 둔다'는 방식이 훨씬 나에게 잘 맞았다.
이 방식은 단순히 공간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점검하게 해주었다.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가, 어떤 물건이 내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공간과 나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단순히 '정리'가 아니라 ‘선택’이 중심이 되자, 물건뿐 아니라 내 시간, 감정, 에너지까지 돌아보게 된 것이다. 남기고 싶은 것을 고르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남기기로 정리한 책상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긴 책상 위는 한눈에 보기에도 훨씬 단정하고 여백이 많아졌다. 이전처럼 쓸모없는 물건이 눈앞을 가득 채우는 일이 줄어들었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에 시선을 맞추기 쉬워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여백 속에서 업무 속도와 사고의 흐름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점이었다. 펜을 찾느라 뒤적이던 일도, 가끔 쓰는 케이블이 노트북을 방해하던 일도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작업 흐름이 끊기지 않았고, 무의식적인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이 방식은 정리 후에도 유지하기가 쉬웠다.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물건은 ‘남기기로 선택한 것’이기에, 자리에 대한 이유와 용도가 분명했다. 그래서 새 물건이 들어올 때도 기준이 생겼다. 이걸 책상에 둘 만큼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따라왔고, 그 덕분에 불필요한 소비도 줄어들었다. 정리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습관이 된 것이다. 내가 선택한 물건들이 내 일의 리듬을 만들어간다는 걸 체감하면서, 공간은 점점 더 나에게 맞춰진 형태로 변화해갔다.
남기는 기준은 곧 삶의 기준이 된다
책상 위 정리 방식의 전환은 결과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줄이기 위해 애쓰며 스스로를 조이곤 했다면, 지금은 남기고 싶은 것에 초점을 두고 나의 삶을 설계한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방향이고, 개수가 아니라 선택의 이유라는 것을 책상 위에서 배운 셈이다. 물건뿐 아니라 인간관계, 일정, 일의 우선순위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도 이제는 무엇을 없애야 할까보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된다.
남기기 위한 정리는 단순히 손에 잡히는 물건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어떤 가치에 집중할지를 결정하는 내적 선택의 훈련이다. 그리고 이 훈련은 매일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다시 이어진다. 책상 위의 한정된 공간처럼, 우리의 하루도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 속에서 돌아간다. 그렇기에 무엇을 남기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이 된다. 책상 정리는 삶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자,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