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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미니멀리즘 실험기

by rena-space 2025. 6. 26.

 일하는 책상 위에 물건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용했던 메모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영수증, 늘 쓰는 펜과 그렇지 않은 펜, 다 읽은 책과 아직 읽지 못한 책, 종종 열어보는 문서철까지. 처음엔 손이 닿는 위치에 자주 쓰는 것들을 두자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준이 흐려졌다. 사용 빈도가 낮은 것들도 ‘언젠간 필요하겠지’라는 이유로 그대로 놓여 있었고, 그 결과 책상은 점점 좁아졌다. 더 이상 노트북을 중심에 두고도 여유롭게 쓸 수 없을 정도였다.

 

책상 위 미니멀리즘 실험기

가장 먼저 줄여본 것은 불필요하지만 익숙한 것들

 

 정리를 결심한 날, 나는 책상 위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우선순위를 나누기로 했다. ‘매일 쓰는 것’, ‘가끔 쓰는 것’, ‘언젠가 쓸지도 모르는 것’.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세 번째 항목이었다. 예를 들어, 몇 달째 열어보지 않은 참고서나 버리기 애매한 팬시한 노트 같은 물건들. 이 물건들은 분명 책상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끈질기게 정리를 방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준을 바꾸기로 했다. 당장 이번 주에 쓰지 않는다면, 책상 위에 두지 않기로. 그렇게 선을 정하니 생각보다 쉽게 정리가 진행됐다. 첫날은 절반 정도의 물건을 치웠다. 자주 쓰는 펜 몇 자루만 남기고 나머지는 서랍에 넣었고, 읽지 않는 책은 책장으로 옮겼다. 공간이 생기자 숨이 조금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 책상에 앉아보니, 비워진 자리에 낯선 여백이 생겼다. 이 여백은 단순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나를 위해 남겨진 ‘여유’ 같았다. 물건이 줄어든 만큼, 잡념도 한 겹 걷힌 듯했다.

 

줄어든 것은 물건이지만, 늘어난 것은 집중력


 가장 뚜렷하게 느껴진 변화는 작업 중 집중력이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책상 위의 시각적인 정보가 너무 많았다.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물건들은 주의력을 분산시켰고, 작업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곤 했다. 하지만 정리 후에는 오롯이 노트북 화면이나 메모지에만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여백이 많은 공간에서 일하자, 작업에 임하는 태도도 차분해졌다. 이전에는 30분만 집중해도 피곤했는데, 이제는 한 시간 넘게 작업해도 크게 지치지 않았다.

 또한, 작업 전 ‘어디서부터 시작하지?’라는 막연한 혼란이 줄었다. 자리를 정돈한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자연스럽게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물건을 줄이자 선택지가 단순해졌고, 매 순간 어떤 도구를 쓸지 고민하는 데 쏟는 에너지가 줄었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선택에 소모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도 이번 실험의 수확 중 하나였다. 줄인다는 건 단순히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집중해야 할 것만 남기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졌고, 일에 대한 만족감도 커졌다.

 

비운 자리에 들어온 것들


 책상 위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 실험은 예상보다 깊은 변화로 이어졌다. 물건이 줄어든 공간에는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정돈된 감정과 여유로운 시간이 자리 잡았다. 책상이 깨끗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를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고, 퇴근 후 책상을 보면 ‘수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정리였지만, 감정적인 정리이기도 했다. 여백을 마주하는 일은 나와 대면하는 일이었고, 더 명료한 하루를 만드는 시작점이었다.

 또한, 물건을 덜어낸 경험은 나에게 선택과 집중에 대한 훈련이 되었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정말 필요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게 했다. 이 작은 실험 덕분에, 나는 나에게 어떤 환경이 필요한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단순한 책상 정리였지만, 그것이 일과 감정, 사고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체감했다. 미니멀리즘은 멋진 인테리어가 아니라,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환경을 직접 만들어가는 실천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 바로 내 책상 위에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