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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입장에서 써보는 감정 해소법

by rena-space 2025. 6. 20.

 우리는 보통 글쓰기를 할 때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합니다. 감정노동으로 지친 날에는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복적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감정을 되풀이하며, 글이 아닌 감정의 늪에 갇혀버리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감정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힘'을 기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감정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다시 바라보고, 이해하고, 통합하는 연습은 훨씬 깊은 치유와 통찰을 가져다줍니다. 타인 시점 글쓰기는 단순한 감정 정리가 아닌, 감정을 초월한 ‘관계 회복’의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써보는 감정 해소법

실험의 구체적인 방식 


 타인 시점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면서 저는 글쓰기의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사건, 나의 감정,  상대의 시점 이 세 가지 구성요소를 기준으로 매일 15~20분 정도 글을 썼죠. 예를 들어 직장에서 있었던 다툼, 친구와의 어색한 대화, 가족 간의 갈등 같은 상황을 택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사건 요약

무엇이 있었는가 가능한 한 사실에만 집중.

 

나의 감정 표현

당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기술.

 

상대 시점에서 다시 써보기

상대가 그 상황을 어떤 입장, 감정, 맥락에서 바라보았을지 상상.

 

 이 방식은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마주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갇혀 있던 주관적인 감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나의 분노나 상처에 집중하면서 글을 시작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상상하는 순간, 감정의 세기가 점차 누그러지고,

글의 끝에 가서는 그래서 어떻게 대화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겁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제가 평소에 냉정하고 무심하다고 느꼈던 동료의 입장에서 쓴 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엔 그가 무례하게 굴었다고만 생각했지만, 글을 쓰며 “그날 그는 팀장에게 크게 질책을 받고 회의실에서 나왔었다”는 점을 떠올렸고, 그의 감정 상태를 상상하면서 글을 쓰자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그와의 관계에 대해 훨씬 유연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고, 나중에는 실제로 그와 더 부드럽게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타인 시점 글쓰기는 관계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정서적 리셋 버튼이 된다는 것을요.

 

감정의 거리두기 그리고 공감의 확장


 타인 시점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곧 ‘감정의 거리두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거리두기는 회피가 아닌 성찰을 위한 거리 확보입니다. 감정을 한 발짝 물러서서 본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더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됩니다. 나는 왜 그 상황에서 분노했는지, 상대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함께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이 글쓰기 방식은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상대의 시선을 상상해야 했지만, 반복될수록 저절로 상대의 감정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기더군요. 특히 감정노동이 많은 직장에서 타인의 감정 상태를 읽는 건 생존과도 직결되는 기술이죠. 이 글쓰기를 통해 상대가 어떤 감정의 지점에서 나와 마찰을 일으켰는지 관찰하는 연습이 되었고, 결국 불필요한 충돌을 줄이고, 관계에서 감정 소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상 밖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썼을 때, 의외로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겁니다. 글 속에서만이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의 감정도 정리하고 나니, 꼭 화해하지 않아도 감정적으로는 마무리가 된 듯한 평온함이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타인 시점 글쓰기는 단순히 감정을 푸는 걸 넘어, 감정을 다루는 언어적 회복력을 길러줍니다. 감정을 느끼고, 말하고, 다시 구성해보는 이 과정은 자기 이해뿐 아니라, 인간관계 전체의 균형을 되찾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글쓰기가 만들어낸 감정의 통로


 타인 시점 글쓰기 실험을 통해 제가 얻은 가장 큰 변화는, 감정이 단절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깊은 자각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느낀 감정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할 여유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감정이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을 글을 통해 체험하게 된 것이죠.

 특히 감정노동이 많은 사람일수록 감정이 ‘내 잘못인가’ 아니면 ‘상대의 문제인가’로 양분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 시점 글쓰기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감정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일어난 반응의 흐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통찰은 감정적으로 나를 해방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왜 나만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지?’라는 질문에 갇히지 않고, ‘이 감정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라는 방향으로 글을 써나가게 되었죠. 글쓰기를 통해 감정에 언어를 부여하고, 언어는 감정을 해석하는 도구가 되었으며, 해석은 곧 치유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글쓰기는 저와 다른 사람 사이의 감정적 통로를 복원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느낌, 혹은 이해하고자 하는 진심이 글을 통해 묻어나오면서, 관계가 조금씩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결국 감정 해소의 가장 깊은 층은 ‘혼자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결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