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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줄 감정일기 30일 실험기

by rena-space 2025. 6. 20.

 감정노동이 일상이 된 직장인으로서, 저는 어느 날 문득 내 감정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조차 놓치기 일쑤였죠. 그러다보니 같은 감정에 계속 휘둘리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체계적으로 관찰해보고 싶어서 시도한 것이 바로 하루 한 줄 감정일기입니다. 매일 단 한 문장으로 오늘의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이죠.

 이렇게 시작된 하루 한 줄 감정 글쓰기는 생각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짧은 시간 투자로 감정을 붙잡고, 일상의 패턴을 관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준 것이죠. 그리고 30일이 지나자, 저는 저 자신에 대해 훨씬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기분이 왜 자주 가라앉는지, 어떤 상황에서 긴장이 올라가는지, 감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으니까요.

하루 한 줄 감정일기 30일 실험기

한 줄 감정 기록의 놀라운 힘


 3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감정을 한 줄로 기록하면서, 저는 기록이 쌓이면 흐름이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매일은 짧고 단순했지만, 그 문장들이 쌓이자 감정의 흐름이라는 큰 줄기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흔히 감정은 순간의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록을 통해 본 감정은 하루하루가 연결된 흐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령 제가 기록한 내용 중 일부를 보면 이렇습니다

6월 1일 오늘은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6월 4일 조금 나아졌지만 집중이 안 된다.

6월 7일 산책을 하니 기분이 환기됐다.

6월 10일 오랜만에 웃음이 났다. 동료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록을 보다 보면 감정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흐름이며, 특히 반복되는 감정 패턴과 회복을 촉진한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 경우엔 무기력함이 반복될 때마다 야외 활동이나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가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있더군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날의 감정이 반드시 큰 사건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사소한 일들이 감정에 더 큰 영향을 주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 감정을 좌우하는 것이 얼마나 작은 요소들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관리가 가능하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더 자주 바라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자기 감정을 점검하고, 이름 붙이고, 그 감정을 존중하는 시간이 생긴 거죠. 그렇게 하루 한 줄이 모여, 감정이 아닌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정의 패턴을 읽는 법


 30일 동안의 감정 기록이 쌓이자 저는 엑셀을 열고 날짜별로 감정을 정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날짜, 감정 키워드, 간단한 메모를 나열했죠. 그렇게 해보니 제 감정에는 분명한 패턴과 반복이 있었습니다. 특히 일요일 저녁과 월요일 오전엔 부정적인 감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했고,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감정이 많았습니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저는 세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감정은 리듬을 탄다. 일주일 주기로 감정의 기복이 존재하고, 일상 루틴이나 업무 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가 많은 날엔 긴장과 피로가, 외부 활동이 있는 날엔 생기와 활력이 감정에 반영됐습니다.

 둘째, 특정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감정의 질을 좌우했다. 동료 A와 대화를 나눈 날엔 ‘편안함’, ‘웃음’ 같은 감정이 자주 등장했고, 상사 B와의 회의가 있는 날엔 ‘긴장’, ‘무력감’ 등의 단어가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제게 사람이 감정 흐름의 중요한 요인임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셋째, 회복을 도운 행동이 있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가 높은 날에는 산책, 반신욕, 조용한 음악 감상이 감정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감정을 다루는 기술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얻은 것이죠.

이런 분석은 감정이란 것이 ‘이유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통찰이 단지 ‘하루 한 줄’의 글쓰기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감정 관찰로 얻은 변화 


 30일의 실험이 끝났을 때, 저는 더 이상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화도 나고 슬플 때도 있었지만,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능력이 생긴 겁니다. 이전엔 기분이 나빠도 그 원인을 찾지 못해 하루 종일 그 감정에 휘둘렸지만, 이제는 “아, 오늘은 외부 자극에 민감한 날이구나” 정도로 인식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감정 자각 능력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변화였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돌리는 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이 됐던 거죠. 이 과정을 통해 저는 감정이라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 가까워질수록 덜 두려운 대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루 한 줄 글쓰기는 ‘나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그날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됩니다. 내 감정의 무늬와 결을 살펴보고, 다음 날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글쓰기가 더 이상 ‘일기’가 아니라 자기 회복의 도구가 된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이 글쓰기를 통해 자기 돌봄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는 점입니다. 감정을 매일 기록한다는 건 나 자신을 매일 한번 돌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작지만 꾸준한 이 실천은 감정노동으로 지친 마음에 작은 쉼표를 만들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