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은 근육을 쓰는 노동 못지않게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리고 이 감정 찌꺼기를 그냥 방치할수록, 다음 날 아침이 더 무거워지죠.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하루의 끝에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샤워로 몸의 피로를 씻어내듯, 글쓰기로 마음의 피로도 씻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퇴근 직후 10분은 감정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시간으로, 이때 글쓰기를 통해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루틴을 만들면 내일의 나에게 훨씬 가벼운 마음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퇴근 후 10분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퇴근 직후 글쓰기라고 해서 거창하거나 철학적인 글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제는 글로 말해보는 거죠.
처음 시작할 땐 다음의 문장 프롬프트로 글을 열어보세요.
“오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때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올라왔을까?”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그 감정을 지금 여기서 풀어주자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이 네 가지 질문만 따라 적어도, 자연스럽게 10분 정도의 글쓰기가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손님이 계산할 때, 짜증 섞인 말투로 ‘이렇게 늦게까지 일해요?’라고 했다. 그 말이 괜히 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상했다. 나도 늦게까지 일하기 싫은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서러웠다. 나 자신에게 ‘수고했어, 그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매일 하다 보면, 어떤 일이 반복적으로 나를 지치게 만드는지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고, 감정의 흔들림을 덜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감정은 언어로 명명될 때 비로소 ‘정리될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그저 막연하게 불쾌하고 피곤했던 하루를 구체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퇴근 후 10분 글쓰기의 힘입니다.
감정 해소 vs 감정 반추: 건강한 글쓰기의 핵심
감정노동을 겪은 후 글을 쓸 때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바로 ‘감정 해소’가 아니라 ‘감정 반추’로 빠지는 것입니다. 감정 반추란, 이미 지나간 일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하면서 감정을 더 증폭시키는 행위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감정을 반복해서 되새기기 위함이 아니라, 한 번 마주하고, 인식하고, 흘려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글쓰기를 할 때는 반드시 마지막 문단에서 ‘감정을 내려놓는 문장’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나니 조금 가벼워졌다”, “그 감정은 그 순간의 나에게 필요했던 보호막이었다. 이제는 괜찮다.” 같은 식의 마무리입니다.
또한, 글쓰기 도중 타인에 대한 분노나 원망이 올라온다면 그것을 억누르기보다 “나는 지금 ○○에게 화가 나 있다. 그 이유는…”이라고 솔직하게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단, 감정을 적은 후에는 반드시 그 감정이 내 안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글을 마무리해보세요.
예를들어 “○○에게 화가 난 건, 내가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내 입장을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감정을 글로 쓰는 지금, 내 입장을 표현하지 못한 내 마음이 안타깝다. 다음에는 조금 더 내 감정을 말해보고 싶다.”
이처럼 감정을 적고, 인식하고, 성찰하는 순서로 글쓰기를 이어나가면, 단순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의 주체로서 회복하는 글쓰기가 가능해집니다. 감정 해소는 흘려보내는 것이지, 똑같은 생각에 갇히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10분 글쓰기가 만든 퇴근 루틴의 변화
퇴근 직후 10분 동안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든 후, 나의 퇴근 루틴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퇴근하면 기운이 빠진 채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멍하니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런 휴식은 피로를 해소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의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이 정리되니 머리가 맑아지고, 억지로 위로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변화는, 나 자신을 하루에 한 번 꼭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나와의 대화입니다. 감정노동을 하며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추느라 자신을 무시했던 하루를, 마지막 10분만큼은 나에게 돌려주는 시간입니다. 이 10분이 쌓여서 자기회복력이 생기고, ‘내 감정은 내가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습관이 지속될수록, 업무 중에도 감정이 격해질 때 '퇴근 후 글로 풀 수 있어'라는 여유가 생깁니다. 감정을 바로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느긋함이 일상에 생깁니다. 결국 10분의 글쓰기는 퇴근 루틴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일상의 감정 리듬을 바꾸는 변화를 만들어낸 셈입니다.